어머니의 눈물을 통해서 본 성체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아주 많은 꼬마였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이 호기심은 
    어김없이 발동하여 질문을 만들어 내었다. 
    "엄마, 엄마! 비는 왜 내리는 거야!" 
    "응~ 하늘나라에 계신 하느님께서 눈물을 흘시셔서 그러는 거란다." 
    그러면 나는 또, 
    "하느님께서 왜 우시는데?" 
    "착하게 살지 않고 자꾸만 나쁜 길로 가는 사람들 때문에 
    슬퍼서 우시는 거란다." 
    정말이지 나는 그날 이후로 비가 내리는 날이면 
    "엄마, 하느님께서 또 우신다"
    그리고 
    "하느님! 울지 마세요. 제가 앞으로 착하게 살께요!"라고 기도드렸다. 
    
    그런데 어느 비오는 날 -첫영성체를 하지 못하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성당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머니께서 미사 중에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의 몸이라고 하는 동그랗고 하얀 것을 받아 드시고(?) 
    자리에 오셔서는 슬그머니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 아닌가? 
    '오늘은 이상하게도 하느님도 우시고 우리 엄마도 운다.'고 
    생각한 나는 덩달아서 눈물을 흘리며 
    "엄마, 내가 엄마 말 잘 듣지 않고 말썽피워서 눈물 흘리는거야! 
    착하게 살지 않아서……?"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따스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어머니의 손이 이렇게 감미롭고 따스한지 몰랐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동그랗고 하얀 것이 
    달콤한 박하사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제대 앞으로 나아가 
    혼자만 그것을 드시고 오시는 것이 커다란 불만이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어머니의 눈물을 보면서 
    '성체의 맛은 달콤한 것이 아니라 쓴 약과 같을 거'라고 바뀌게 되었다. 
    -첫영성체를 할 때까지- 
    그러나 어머니의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흘리셨던 그 눈물의 의미는 
    내가 신학교에 입학하는 순간에 
    처음으로 내 마음 안에 전해져 왔다. 
    지금도 나는 신학교에 입학해서 참여했던 
    그 첫 미사의 은혜로움을 잊을 수가 없다. 
    내 눈 앞에 높이 들리워지는 빵의 형상인 예수님을 보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공부를 그렇게 썩 잘하지 못한 나, 
    고집불통이었으며 막내라는 이점을 이용해서 
    내 것만을 생각할 줄밖에 몰랐던 나, 
    내놓을 수 있을 만큼의 신앙적 유산을 갖지 못한 채 학창시절을 보냈던 나, 
    신학교에 입학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나를 받아 주시는 예수님께 그 어떤 말로도
     '감사'의 표현을 드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성체를 받아 모시는 순간 
    이내 눈물로 녹아 내렸다. 
    이것이 성체를 모셨을 때에 
    어머니께서 흘리셨던 눈물의 의미였으리라……. 
    
    성체를 받아 모실 때 흐르는 어머니의 눈물의 의미는 
    사제서품 미사 때에 더욱 더 깊이 내 마음 안에 전해져 왔다. 
    다른 부제들과 함께 제대 앞에 엎드려 성인호칭기도를 바치는 순간, 
    사제서품을 준비하면서 살았던 
    내 삶의 모습들이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부족한 내 삶이었던가?' 
    그리고 그 모습들 사이사이에 성서 말씀이 솟아올랐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시편 8,4)" 
    
    이마를 고인 손등으로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가 
    뜨거운 빗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그때 그 어머니의 눈물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었으리라……. 
    
    첫 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체를 영할 때 흘리셨던 어머니의 눈물은 
    이제 나의 눈물이 되었다. 
    나아가 이 눈물이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최고의 찬사임을 깨닫게 되었다. 
    성찬의 전례 안에서 읽게 되는 '감사송'은 
    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어찌나 잘 표현해 놓았는지, 
    팔벌려 미사를 집전하는 나의 몸을 잘 가누고 서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버지께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연중평일 감사송4)."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찬미가 
    당신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지만,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통한 우리 구원에는 
    도움이 되기에 허락하신다는 사실, 
    그리고 이 찬미가 하느님 아버지께는 필요하지 않으시니, 
    우리가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것도 
    그분의 은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나를 얼마나 눈물나게 했는지……! 
    
    오늘도 미사를 봉헌하면서 부족한 나의 손을 통해서 
    변화되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주 대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가늠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본다. 
    성체 안에는 주님의 무수한 움직임들이, 
    그분의 삶이 담겨져 있다. 
    
    '성체 안에는 우리를 위해서 근심하시고 걱정하시며, 
    밤잠 설치시며 흘리시는 그분의 눈물이 들어있다. 
    성체 안에는 우리를 위해서 
    모진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분의 발걸음이 들어있다. 
    성체 안에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시는 그분의 모습이 들어있다. 
    성체 안에는 죄인들과 함께 하셨으며, 
    그들의 죄를 씻어내시는 그분의 용서가 들어있다. 
    또한 성체 안에는 세상 안에서 
    신앙인답게 살아가려 발버둥치는 우리들에게 건네시는 
    그분의 위로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성체 안에는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보고 기뻐하시고 웃으시는 
    그분의 기쁨과 웃음소리가 들어있다. 
    성체 안에는…….' 
    
    이렇게 성체 안에는 예수님 그분의 살아 있는 삶이, 
    움직임이 들어있다. 아니 그분 모습 그 자체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 내가 모시는 성체 안에도 마찬가지로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다시 어린시절 어머니께서 성체를 모시며 
    눈물 흘리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도 소나기가 한차례 내린다. 
    
    -2000년 여름 가톨릭 다이제스트 '그리스도의 향기'란에 올려진 글